2023년 2월 애틀랜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설렘은 커녕 걱정 한가득으로 잠 못 이뤘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2학년 딸아이와 단 둘이 먼저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연수준비에 있어 미준모 카페는 거의 Chat GPT급 정보력을 갖고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조지아텍 중고게시판을 함께 활용하면 활발한 중고물품을 구매/판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기에 정착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대만족이었습니다. 집 구하기부터 아이 학교서류, 미국 계좌 만들기, 각종 유틸리티 대행, 차량구매 등 미국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settle down 하는 데는 한달정도가 걸린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입국한지 3일만에 미국 중학교에 등교해준 딸아이에게 가장 고마웠습니다.
저의 가족이 자리를 잡은 곳은 애틀랜타 다운타운에서 차로 40분정도 떨어진 알파레타(alpharetta)라는 도시인데, 한인들이 많이 사는 귀넷 카운티의 존스크릭, 둘루스, 스와니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에 H-mart가 10분내에 3개가 있어 한식재료 조달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운타운의 무서운 분위기와도 많이 다르고 정말 살기 좋은, 여유로운 환경의 주거 지역이었습니다. 가끔 혼자 아침에 동네 한바퀴 산책하다 보면 사슴들이 그냥 지나다니는 초록 도시였습니다.
제가 일년동안 지냈던 곳은 Emory School of Medicine이 위탁 운영하는 Children’s Healthcare of Atlanta (CHOA), 즉 어린이 병원의 pediatric epilepsy center입니다. 지금은 타 병원으로 이직하셨지만 PI셨던 Ammar Kheder 선생님은 StereoEEG(SEEG)를 이용한 epilepsy surgical team의 leader로서 seizure semiology을 주로 연구하셨습니다. 매년 SEEG course 심포지엄을 진행했는데 3일 내내 4명의 케이스를 갖고 SEEG 대가들이 하루 종일 토론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1. SEEG course를 마치고
저의 일상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CHOA Scottish Rite Hospital로 출근해서 스벅 커피 한잔을 들고 뇌파 판독실로 입실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Neurology professors 뿐만 아니라 fellows, residents, physician assistants, EEG technicians 등 많은 분들이 정말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주로 비디오뇌파 판독을 함께 하면서 토론하고(주로 듣고^^), 병동, ICU, NICU 회진도 같이 다녔고, 외래도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제 존재를 가장 많이 챙겨주고 식당밥도 같이 먹어준 Dr. Zhang, SEEG 가 있을 땐 수술방에 꼭 데려가 준 Dr. Lin과 Dr. Bhalla, 그리고 마음 따뜻한 Dr. Sankhla 이외의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너무 반갑게도 하반기에 이직해서 오시게 되어 만났던 최형원 선생님과의 즐거운 대화도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그림 2. CHOA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처음 한달은 정착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두 번째 달부터 연수기관에 적응하면서 가족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애틀랜타 자체는 노잼도시이긴 하지만 조금만 주위로 가면 여유로운 삶은 느낄 수 있고 가 볼만한 역사적인 장소가 많습니다. 미국 중부내륙의 중심이면서 무엇보다 델타항공 본사가 있는 미국 교통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어디로든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 조지아 Savannah, 플로리다 Destin beach, 앨리바마 Mongomery, 루이지애나 New Orleans 등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이고, Yellowstone National Park, New York 등도 많은 항공편이 있습니다. 2023년 12월 American Epilepsy Society의 annual meeting이 올랜도에서 열렸는데, 덕분에 반가운 얼굴을 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절반이상을 blackout 되었던 숨기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림 3. 2023 AES 올랜도에서 만난 반가운 분들과 함께
과거에는 앞서가는 선진국의 의료기술과 연구를 배우는 것이 해외 연수의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이 월등히 발전했고, 해외학회 참여, 온라인 정보 획득이 용이해져 현재는 단순히 기술과 연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자기개발이라는 의미로 점차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해외연수는 전임의 시절부터 쉼 없이 달려온 제게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가족과 꽁냥꽁냥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밀렸던 논문 작업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나를 계획하고 충전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주신 김원섭 병원장님과 저의 공백을 200% 메꿔준 우혜원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림 4. 딸아이와 소금사막(Bonneville Salt Flats)에서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병원 이은혜입니다. 저는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미국 UC San Diego의 Gleeson Lab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연수기가 연수를 준비하는 후배 교수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연수지 선택
연수지를 결정할 때 저는 두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첫째, 추운 동부보다는 햇빛이 좋은 서부일 것,둘째, 유전학(Genetics)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일 것. 이러한 기준에 따라 제가 선택한 곳은 UCSD의 Joseph Gleeson 교수님 랩이었습니다.
Dr. Gleeson은 소아 신경학(Pediatric Neurology)을 전공하셨고, 이후 Boston의 Christopher A. Walsh 교수님 연구실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임상과 실험실 두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독특한 경력을 가진 분입니다. Gleeson Lab은 중동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brain malformation 환자들의 데이터를 모아 새로운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는 데 주력하는 연구실입니다. 현재 주요 연구 주제로는 spina bifida의 유전적 원인,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ASO(antisense oligonucleotide) 제작, brain somatic mutation 연구 등이 있었습니다.
Gleeson Lab에서는 매주 정해진 일정에 따라 각자의 연구 발표와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과 달리 컨퍼런스 시간에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질문과 활발한 토론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맡은 연구 주제는 HPDL (4-hydroxyphenylpyruvate dioxygenase like) 유전자 변이와 관련된 희귀 질환이었습니다. 제가 합류하기 전에 이미 Gleeson Lab에서는 17명의 영아 신경퇴행성질환 환자들에게서 HPDL 유전자 변이가 원인임을 밝힌 논문을 발표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NYU의 Pacold Lab에서 HPDL 유전자의 역할을 밝혀내었고, 이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 세계의 HPDL 변이 환자들을 찾아 데이터를 정리하고, 나아가 genotype-phenotype correlation 를 정리하여 향후 natural history story 및 임상시험 기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작업을 맡았습니다.
Dr. Gleeson 은 UCSD뿐 아니라 Rady Children’s Hospital의 Rady Professor로도 활동 중이어서 병원의 소아신경과 교수님들과도 여러 차례 Zoom 미팅을 통해 연구 계획서를 준비하고, 연구비 신청도 진행했습니다. 또한, 연수 기간 말미에는 Rady Children’s Hospital의 Neurogenomics Conference에서 발표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귀국하기 전까지는 연구비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미국 생활은 주거지와 아이들 학교 선정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희 가족은 moving sale을 받지 못하고 방 네 개짜리 단독 주택으로 입주했는데, 텅 빈 집에 가구를 채우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린 것 같습니다. 연수 다녀오신 선배님들께서 항상 처음엔 밥상도 없이 바닥에서 밥을 먹었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아마존에서 미리 작은 좌식 테이블을 주문해서, 다행히 처음부터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큰아이가 축구를 하며 넓은 공원에서 응원했던 기억이 가장 큰 추억으로 남습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바빴던 남편이 미국에서는 House-husband가 되어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거나 햄버거를 사먹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를 견디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아파트가 아닌 하우스 생활을 하다보니 벌레 문제 (미국에 거미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비가 많이 올 때 가라지에 물이 차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하우스 뒷마당에서 차콜 그릴로 고기를 구워 먹었던 시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샌디에고의 높은 물가로 인해 경제적 부담은 컸지만,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그 어떤 비용보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짧은 1년 연수였지만, 이번 경험이 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연수를 준비하시는 후배 교수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연수기를 마칩니다.
그림 1. UCSD 연구실 건물
그림 2. Padres 팀의 김하성 선수 출전 경기 관람
혼란한 시기에 연수를 다녀오게 되어 글쓰기가 망설여진 것이 사실입니다. 부족한 경험이지만 향후 계획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첫 연수를 떠나면서 세가지 목표를 두었다. 첫째는 틱장애와 발달장애 환자들을 더 폭넓게 경험해 보는 것, 둘째는 뇌파데이터를 이용하여 AI 분석을 공부해 보는 것, 셋째는 숙제처럼 안고 지내던 인지치료(IE)에 대해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진행중인 과제로 장기간 본국을 떠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국내와 국외를 분산하여 연수지를 정하게 되었다.
첫번째 목표를 위하여 틱과 발달장애에 대한 대표적 연구자들에 대한 논문과 연구방향을 검색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예일대학과 도쿄대학에서 회신이 왔는데, 임상환자들을 좀 더 볼 수 있을 것 같은 도쿄대병원으로 결정하였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도쿄대병원에서 연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child neuropsychiatry의 director이신Dr. Kano 교수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서울을 떠나 도쿄대 앞에 혼고라는 지역에 도착한 날은 늦은 밤이었다. 붉은나무의 옛 정문 (아카몬)이 육중해 보였고, 은행나무가 아직 노란 잎들이었다. 학교 앞길에는 일본어 간판의 상점들과 오래된 서점들, 배낭을 맨 학생들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타임랩스를 한 느낌이었다. 버스정거장의 도쿄대학 앞이라는 표시를 보자 비로서 실감이 났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다른 연수지로 가시는 분들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한다. 생활환경은 비슷한 편이고, 병원 일정은 빡빡한(?) 편이다. 시간대도 한국과 같기 때문에 수시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진료에서 벗어나 주어지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고, 일종의 관찰자적인 시각에서 그때 그때 순수하게 느껴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았다.
Kano 교수님은 초면의 연구자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연수 기간 중에는 외래와 conference, 병원행사와 학생교육장면 등에 참석하였고, 틱장애에 대한 한일공동연구를 기획하였다. Child 와 adult psychiatry는 같은 층에 위치하였고 행정 공간, 검사와 치료실, 회의실 등이 한 층에 있었다. 중앙에 교무실과 같은 큰 교실이 있어서 교수님과 모든 의국원들, 치료사들이 같이 사용하고, 한쪽에는 케이터링 시설이, 책장에는 여러가지 전문서적이 정리되어 있고, 나는 한쪽 끝의 책상을 임시로 사용하였다. 흔히 임상 각과를 OOO 교실이라고 불렸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주니어 스탭들과 치료사들은 매우 친절했고, 조용하지만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래 진료실의 내부는 한국의 진료실과 매우 비슷했는데, 외래는 오전 일찍 시작해서 창문밖에 어둠이 내린 후에나 끝났다 (도쿄는 해가 더 짧은 것 같다). 한 환자의 진료는 30분 이상 길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소아 초진의 경우에는 주니어 스탭이 보는 시간을 포함하여 한 환자만을 오전 내내 보기도 했다. ASD, ADHD, TS 진단의 환자들이 많았는데, 소아연령 뿐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다니고 있는 환자들도 많았고 중년 이후의 환자들도 있었다. Kano 교수님은 어느 환자에게나 친절하셨다. 특히 소아환자에 따라 음성과 톤을 맞추어 조절하여 수줍어하는 아이도 마음을 열게 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발달장애 환자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해 후에 여쭤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환자들이 치료받더라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상황을 겪게 되는데 그들의 삶의 여러 시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때마다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던 것이 마음에 남는다.
일본은 소아들을 위한 신경발달질환 치료제들의 종류와 제형이 좀 더 다양하였다. 임상의사가 한약도 같이 처방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틱장애 인지행동치료 (CBIT)의 실제 시행도 접해볼 수 있었다. 도쿄대 연구팀에서는 환자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여기서 전문가들에 의한 틱질환에 대한 설명과 치료, CBIT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성인과 소아파트가 함께 진행하는 컨퍼런스도 인상적이었다. 성인환자라도 ASD 가 의심되어 소아파트의 자문이 필요한 경우 등에 일종의 grand round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총회진처럼 병실로 올라가는 것은 필자의 전공의 때와 비슷하였고, 어떤 경우는 환자가 컨퍼런스 룸으로 직접 내려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일상생활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젓가락은 가로로 놓고 밥그릇은 들고 먹는다. 편의점은 친절하고 화장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전철은 비슷하지만 복잡하고 교통비가 한국보다 비싸다. 김치와 콩나물은 한국과 똑같아 보이는데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영화 ‘러브레터’는 일본에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등등. 도쿄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정문 바로 앞에 있어서 정문에서 후문까지 학교를 통과하면 오래된 의과대학건물이 나오고 좀 더 걸어가면 병원이 있었다. 도쿄대 캠퍼스의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밤에 걸어다닐 것 같은 육중한 나무들이 있었고, 학생들 뿐 아니라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와서 큰 수레와 같은 유모차에 아이들을 여럿 태우고 줄줄이 가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일본체류의 끝 무렵,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의 음향진동연구팀이 도쿄대를 방문하여 공동 컨퍼런스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역사적인 건축과 강의실에서 뇌발달과 뇌파의 응용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고 끝난 후 한일 팀이 화끈한 회식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두번째 목표는 뇌파데이터의 AI 분석을 하는 것으로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연구팀과 교환교수로 협업을 진행하였다. 임상의와 공학계열의 연구자가 협업을 하는 것은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과 비슷하다. 때로는 해당영역에서는 너무 당연한 관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공학자는 이미 알려진 분석방법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고, 임상의는 기존의 분석방법으로 분명한 차이를 검증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협업자마다 다르므로 공동연구자를 정할 때 본인의 연구에서 필요한 것과 연구스타일을 고려하는 것이 성공적인 요인일 것 같다. 같은 뇌파를 놓고 임상 수준과 데이터 수준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서로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다. 발산적인 연구의 진행을 적절한 수준에서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임상의사의 역할인 것 같다. 연구실 학생들 중 우간다에서 온 대학원생이 있었는데 한국말을 매우 잘 하였다. 뇌파의 기초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면 진지한 눈빛으로 여러가지 새로운 질문들을 하였던 것이 기억 난다.
세번째 목표는 20 년쯤 전에 공부했던 소아 인지치료의 일종인 IE license를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인지치료는 특수교육 쪽과 더 가까울 수도 있지만, 발달문제로 내원하는 환자들의 상당수에서 반드시 필요한 치료이기도 하다. 일반 소아과 의사였던 오래전 neuroplasticity 라는 단어를 인지치료 워크샵에서 처음 듣게 되었는데, 이후 이끌리듯이 소아신경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 같다. 원래는 국제대표인 Dr. R. Feuerstein 과 연락하며 brain rehabilitation center 가 있는 이스라엘 본부에 연수를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전쟁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본부팀이 주관하는 체코, 그리고 홍콩 지역에서 연수를 받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체코에서는 이전부터 관심을 두었던 leaning potential assessment코스를 들었다. 기존의 지능검사와 같은 확정된 능력이 아니라 인지적 변화가능성 (potential)을 측정하는 검사법으로 문화적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신경질환이 있어 기존지능검사에서 저평가되기 쉬운 소아 환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중국에서 온 참석자들과는 문화권이 비슷해서 인지 곧 친해지게 되었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매일 카를교 근처의 성당들에서 열리는 성악회나 오르간 연주회에 갔었다. 비록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지만 성당안을 흐르는 음악 속에서 여러가지 소회를 느끼며 감사했다.
홍콩에서는 정서와 인지를 함께 다루는 IE 코스를 수료하고, the Education University of Hong Kong의 학장이신 Dr. Shin 을 만나 홍콩공교육내 특수교육시스템과 발달장애환자의 IE 효과의 검증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가졌다. 최근에 행동조절을 우선하는 ABA 보다는 parent-child relationship을 우선하는 치료에 좀 더 마음이 기울어 정서가 발달의 leader 이고 motivator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인지치료의 이론 중 인지로 정서를 조절할 수 있다면, 정서가 먼저인지, 인지가 먼저인지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홍콩의 교육전문가인 Dr. Au 는 ‘They are interwoven’ 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아 그렇지! 하고 당연하지만 놓치고 있었던 생각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역시 질문은 중요하다.
처음에 계획한 일들을 다 이루지는 못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달려오던 시간에서 한 걸음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 의미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사람들의 친절함과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국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해외에서는 K-POP이나 드라마, 한국음식 등 K-culture 의 유행이 매우 뜨거웠고, 한글을 배우거나 한국에 여행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이 매력적인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다시 돌아와보니 더욱 어려워진 의료환경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현실도 어렵게 되고 있어 안타깝다. 글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도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연구년 기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의 환자진료와 동료 연구자들에게 기여하는 것은 필자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