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너무 아파!!!”, “엄마야, 쌤~ 좀 잡아주세요!! 떨어질 것 같아요~”, “힝… 폴 멈췄어요~ 살짝 돌려주세요~”, “오늘 왼팔 완전 털렸어요. 지금 펌핑 꽉 돼서 힘 못 쓰겠어요~” 폴 수업시간 동안 나를 비롯한 회원들이 주로 내지르는 외침들이다. 때로는 살이 찢기는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때로는 추락할 거 같은 공포로 단전에서 나오는 저런 비명을 매번 쏟아내면서도, 2년 4개월째 배우고 있는 폴댄스. 대부분의 학원들이 “OO 폴댄스”라고 상호명을 쓰지만, 결단코 댄스의 강도가 아니다. 이전에 차차차, 자이브 같은 스포츠 댄스를 몇 달 배운 적 있었는데, 그것도 일반 댄스보다 제법 강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폴 댄스는 스포츠 댄스보다 체감으로는 몇 배 더 체력 소모가 심하게 느껴진다. 일단 오롯이 내 양팔로 중력을 거슬러 내 체중을 끌어올려야 하고, 그렇게 폴에 매달려 버티면서 여러가지 동작을 수행하기 때문에, 폴링하는 동안 신체 전반에 걸쳐 힘을 계속 유지하면서 운동을 하게 된다.
전공의 3년차 무렵부터 아주 길게 쉰 적 없이 꾸준히 운동을 해왔었는데, 제일 위험을 무릅쓰고 했던 익스트림 스포츠는 서핑이었다. 파도가 오는 순간에 보드 위에서 그 파도를 넘어갈지 올라탈지의 판단과, 이후 무사히 테이크-오프하거나 잘못해서 파도 안에 소용돌이 돌다가 보드 위로 안착할 때까지,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오로지 혼자서 헤쳐 나와야 했다. 하지만 바다 위를 패들링 하면서 나아갈 때, 내 몸의 완전한 자유가 느껴지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송정 바다를 오가다가, 미국 연수를 다녀오고 COVID-19 팬데믹 시기에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론 실외보단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TV에서 정은지 선수의 폴 댄스를 보게 되었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나라 폴댄스 선수로 1세대이자 월드 챔피언 1등의 빛나는 실력의 선수인데, 마치 무중력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와 같았다. 눈으로 보고도 저게 가능한 건가 싶은 고난도 스킬의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에다가 정은지 선수만의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퍼포먼스를 감상한 뒤, 나도 모르게 양산에 폴댄스 학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양산에선 다닐만한 학원이 검색되지 않아서, 시작을 못하고 있던 차에, 같은 의국의 동료 교수님 한 분의 중학생 딸이 부산 쪽에 폴댄스 다니는 정보를 듣고, 부산 쪽으로 반경을 넓혀 가보기로 했다.
2022년 7월, 체험 한시간 신청하고 부산대 앞 더제이 폴댄스 학원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갈 때의 너무나도 뻘쭘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학원 안 모든 사람들의 비키니 비슷한 헐벗은 옷차림에 나 혼자 괜히 민망해서 이리 저리 시선을 돌리면서, 누가 봐도 처음 온 사람 티 나는 운동복 차림으로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몰라하던…. 양손으로 폴을 잡고 몹쓸 몸뚱아리를 끌어올려 대롱대롱 매달리는 게 그날의 최선이었다. 5초정도 버텼다가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매달려서 회전하는 재미에 배워보자고 결심하고 덜컥 수강을 시작했다. 입문/초급 수업 시작하면서, 폴링의 왕기초 동작들을 하나씩 배웠는데, 평소에 홈트를 쭉 해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못 따라가진 않았는데, 배우는 동작에 따라 경험해 본적 없는 지독한 통증을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폴싯이란 동작은 양 허벅지 안쪽에 폴을 끼워서 앉듯이 하는 건데, 처음 했던 날 허벅지 안쪽이 퍼렇다 못해 보라색으로 멍들었고, 며칠동안 마치 쩍벌처럼 허벅지 엉거주춤 벌여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초급 3-4개월째까지 점점 동작도 익혀지고 샘들이 그날 수업 진도로 만들어온 콤보도 70프로 이상은 완콤(1-2분짜리 콤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하면 완콤이라고 말함)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습게도 내가 진심으로 폴을 잘 하는 줄 알았다 (우물 안 개구리^^;;;;). 중급반 수업시간에 가보니, 이건 왠걸…. 폴에 바로 서서 했던 동작들을, 대부분 거꾸리 자세로 하는게 아닌가…. 사람이 어떻게 폴에 거꾸로 매달려서 있을 수 있는 건지…. 일단 머리를 바닥으로 향해서 내려오는 동작들 때문에 무서움과 긴장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던 중, 일반 취미반 수업 말고 전문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전문반은 소수정예로 고난도 동작을 집중해서 진도 나가는 수업인데, 당시에 빨리 업그레이드 하고픈 욕구가 치솟아서 시작했지만, 막상 전문반 수업을 해내기엔 많이 부족한 실력이었는데, 마음만 앞서 나갔던 것 같다. 같이 수업하던 전문반 회원들 중에 내가 제일 열등생으로 겨우겨우 따라가던 중에, 드디어 그날, 사고가 발생했다. 브라스 플립이라고 공중제비하듯 몸을 회전시켜서 착지하는 동작을 배우다가… 제법 높은 위치에서 순식간에 떨어졌는데, 바닥에 매트가 있었지만, 그 바깥으로 떨어지면서 얼굴을 맨바닥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처음엔 이가 부러진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는 괜찮았고, 출혈도 없고 그다지 붓지도 않았는데, 밤에 무던히 코피가 나서 CT를 찍었더니 좌안에 blow-out fracture가… 내 두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지만…. 폴댄스 시작한지 6개월만이었다. 본원 성형외과 교수님의 엄청난 스킬로 현재 거의 티도 안날 정도로 수술 결과는 좋았다 (나름 손흥민 선수와 같은 부상당한 것에 자부심 ^^).
회복 후 6-7주쯤 지나서 다시 폴학원 갔을 때, 샘들이 전부 놀라서 기암을 하셨다. 회원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야 한번씩 있었지만, 이렇게 수술까지 한 안와골절은 제일 심한 부상이었고, 이후에 당연히 그만 둘 줄 알았다고 입을 모으셨다. 다시 폴 한다 했을 때 집에서도 난리난리였지만, 그때까지 배운게 아까워서 도저히 거기서 그만 둘 순 없었다. 부상 이후론, 거꾸로 얼굴을 바닥 보는 동작들은 많이 무섭고 지금도 긴장되지만, 조심해서 안전하게 하고 있다. 물론, 부상을 일으킨 플립 같은 회전 착지 동작은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특별한 일 없으면 1주 2번씩 꼬박꼬박 부산까지 버스로 오가면서 꾸준히 다니는 걸 보면, 내가 폴에 진심인 건 확실한 것 같다. 폴 운동의 장점은, 우선 소홀하기 쉬운 상체 및 후면 운동에 너무 탁월하다. 양팔 어깨, 광배근 및 코어를 이렇게 고강도로 집중 훈련하는데 이만한 운동이 없는 듯하다. 두번째로는, 폴 동작을 잘하기 위해선 유연성이 엄청 필요하기 때문에 스트레칭과 유연성 운동도 매 시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혼자 홈트할 때에도, 이전엔 스트레칭을 5-10분로 짧게 했지만, 요즘은 스트레칭만 20-30분씩 공들여 하고 있다. 세번째로는, 수업때마다 새로운 동작과 콤보로 지겹지가 않고, 새로운 동작을 성공하면 그 성취감이 너무 크다. 마지막으로, 동작들의 아름다운 미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본인의 실력 향상을 보면서 즐길 수가 있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이 있고, 폴웨어가 너무 예쁜게 많아서 자꾸 새 옷을 사고픈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 나도 처음 3-4개월쨰엔 주구장창 같은 옷 한번로만 입다가, 차츰 야금야금 사더니, 어느새 10벌이나 되었다.
폴댄스 시작 후, 매번 영상을 폰에 저장해 둘 순 없어서, 영상 저장을 위해 인스타그램 이란 걸 처음 하게 되었고, 어느새 폴 프로필도 2번이나 찍었다 (그림 1, 2). 병원에서 의사 및 스텝으로 진료 업무와 학회 활동하는 거 외에, 매주 일정시간을 오직 나를 위한 시간으로 최선을 다해 할애한다는 것이, 세월이 갈수록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소한 운동이지만 한번쯤 시도해볼 기회가 생기거나 호기심이 있다면, 주저 말고 일단 해보라고, 주변인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50세를 앞두고 시작한 폴이 나에겐 인생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까.
(그림 1) 2024년 1월 28일, 첫번째 폴 프로필, 실내 스튜디오 촬영
(그림 2) 2024년 10월 6일, 두번째 폴 프로필,
다대포 해수욕장 촬영 중 비소식으로 굴다리에서 촬영
2024년 10월 23일 폴수업 영상